좀바르트는 말하기를 경제체제란 "① 특정한 경제 정신으로 지배되고 ② 특정한 질서와 조직을 가지고 ③ 특정한 기술을 사용하는 바의 정신적 통일체로서 사유된 경제 양식이다"라 하였다. 여기서는 경제체제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서 경제 정신, 질서, 기술과 조직의 세 가지를 선택하였다. 좀바르트는 이 세 가지 가운데서 무엇보다도 경제 정신을 제일 중대시하였다. 마르크스는 경제체제를 구별하는 3대 기준으로서 ① 경제 정신 ② 생산수단의 소유 형태 ③ 경제적 배분 결정의 기구를 들었다. 마땅히 좀바르트르의 기술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산력 수준의 간극을 근거에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마르크스는 이 요소 가운데 생산력과 생산관계 특히 생산수단의 수요 형태와의 두 가지―이 두 가지가 생산양식을 만들어낸다―를 중요시하여 무엇보다도 생산수단의 소유 형태에 제일 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좀바르트나 마르크스의 경우 경제체제의 차는 두 면의 복합으로 설명되고 있었다. 제1면은 경제발전의 '과정'의 차이라는 면이다. 좀바르트는 위에 규정한 경제체제의 개념을 기초로 하여 원생적 혈연 단계, 대가족, 촌락, 장원, 수공업, 초기자본주의, 고도자본주의, 후기자본주의라는 경제발전단계의 구별을 만들고 마르크스 및 그 후계자는 생산관계와 생산력을 기본으로 하여 원시공산체,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상업자본주의, 독점 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경제발전을 구별하였다. 제2면은 경제발전에서 '방법'의 차이라는 면이다. 좀바르트는 그가 고른 기준에 대하여 대개념을 들었다. 예를 들어 경제 정신에 대해서 영리주의와 욕망 충족 주의, 합리주의와 인습주의, 전체주의와 개별주의를 들고, 나중에 경제질서와 조직에 관해서는 구속과 자유, 사경제와 공동경제, 귀족주의와 민주주의, 폐쇄성과 개방성, 충족 경제와 유통경제, 공기업과 사기업, 그리고 기술에 관해서는 경험적과 과학적, 정체적과 혁신적, 유기적과 비유기적 등의 구분을 들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구별을 경제발전단계의 격차만이 아니고 거의 같은 경제발전단계를 경유할 때에 발전 방식의 우열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국가에 비교하여 사회주의 국가는 공업생산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또 실업이나 경기변동이 상대적으로 낮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또는 어떤 국가가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되면 실재하는 총 자원량이 일정한 채로 그 이용 형태에서 큰 변화로 인하여 성장률이 크게 증가한다고 할 경우에도 발전 방식으로서 사회주의의 이로운 점을 말하고 있는 격이다. 한편 루돌프 크리스토프 오이켄, 아서 세실 피구나, 조지 허버트 미드와 같은 사람이 경제체제의 비교라고 말할 때에는 거의 같은 경제발전단계에 있고 자원배분의 기구로서 어떤 것이 대조적으로 생산성이 높으냐 하는 점에 토론의 중점을 두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러한 경우에는 가격 경제와 계획경제, 혹은 시장경제와 중앙관리경제라는 구별을 잘 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하이에크와 뢰프케나 미제스 등 신자유주의자는 가치체계가 다르다는 시각을 제일 중요시하여 경제체제를 비교했으며 마르크스주의자나 사회주의자와는 반대로 인간성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자유라고 하는 가치를 밟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나 계획경제라고 하여 심한 비평을 덧붙이고 있다.
역사
피터 다이아몬드와 제임스 멀리스의 1970년대 논문을 통해 재정학이 경제학의 한 분야로 비치기 시작한 뒤 토니 앳킨슨과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저술 《공공경제학 강의》를 통해 공공경제학이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재정학은 시장 실패로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발생되었다. 후에 데이비드 리카도가 조세귀착의 관점에서 분배 이론을 강조하고 아서 세실 피구가 총 회생 최소화 원칙을 기본 규범으로 내세운 재정학 연구를 간행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재정학이 대두했다. 세계경제가 대공황을 경험하는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거시재정정책이 중대해졌고 이에 따라 케인스 모형이 재정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기 시작했다. 1940년대에는 헨리 캘버트 시몬스의 소득의 정의와 지불 능력의 측정에서 기인된 소득세와 같은 주제들이 다뤄졌다. 1950년대에는 일반균형이론이 나오면서 경제학의 관심사가 거시적 측면에서 미시적 측면으로 넘어갔고 재정학의 관심사는 기존의 조세 측면에서 정부 지출 측면으로 이동했다. 나중에 폴 새뮤얼슨에 의해 공공재를 능률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조건이 제기되었고 공공재의 공급에 있어 무임승차 문제를 정리하기 위한 연구와 지방재정 이론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리차드 머스그레이브는 《재정학 이론》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재정학 교과서로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1960년대 들어서 정부를 효율성과 공평성의 조화를 통해 공공정책을 거행하는 역할로 취급했던 기존의 재정학이 정부 실패의 가능성, 정치인과 관료의 전략적 행위를 통한 자원배분 왜곡 문제, 의사결정 제도 등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를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이로 인해 공공선택 이론이 발전하였다.
공공경제학의 정의
공공경제학은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소득 분배의 형평성의 실현을 목적으로 공공경제 부문을 검토하는 학문 분야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을 때, 시장은 최적의 자원 배분을 성취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시장 실패라고 부른다. 이때 공공경제 부문이 시장에 간섭해 시장 기능을 강화하거나 또는 시장 기능이 전혀 정지된 경우에는 다른 자원 배분 기구를 갖추고, 최적의 자원 배분을 구현하는 것이 요청된다.
두 번째로 시장에 의한 소득 분배는 결단코 공평성이라는 사회적 윤리 기준을 만족할 수는 없다. 이 경우 공공경제 부문이 사회 보장 정책 등에 의한 균등한 소득 분배를 실현하기 위해 간여할 필요가 있다.
접근 방식
경제학은 시장을 전제로 하고 그중에서 재산 등의 생산, 분배, 소비의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대다수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환경 문제, 복지 문제, 도시 문제에 관심이 격양되어 비시장적 분야에서 공공 서비스의 제공 및 공공 교통, 수도 사업 등의 준 공공재를 공급하는 공공 부문의 경제 활동과 그 자원 배분 문제에 경제 분석의 방법을 증대시키는 것이 긴요했다. 이러한 비시장적 분야와 공공재 또는 준 공공재를 대상으로 하는 경제학은 마이크로분석의 후생경제학과 연결되어 공공경제학으로 발달했다.
공공경제학의 발전
과거에 공공부문의 경제 활동, 또는 민간 경제에 대한 간섭 문제는 재정학 내지 후생 경제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었다. 이것이 1960년대 이후, 공공경제학이라는 영역의 문제가 된 것은 다음의 3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첫 번째로 공공부문의 양적 질적 확대이다. 양적으로 보면 정부 지출이 명목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10%에서 20%이다. 게다가 재정 규모로 봐도 국민 소득 대비 조세 세외 부담률은 낮은 나라도 25% 높은 나라는 50%까지 되어 있다. 이러한 공공 부문의 양적 확대는 공공 부문이 민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질적 확대에 대해서도 의료, 교육, 주택 등의 면에서 순수공공재로부터 사적재에 가까운 것까지 공공 부문에 의해 제공되게 되었다. 또 사회 보장 제도의 확장, 혹은 소득 재분배 면에서 공공 부문의 활동 보강을 국민들이 갈망하게 되어 공공 부문이 더더욱 증폭됐다.
두 번째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재화의 증가와 동시에 그러한 재화의 알맞은 공급 및 비용 부담 방법을 결정하는 문제가 생기고, 그 때문에 정치 기구에 의한 의사 결정 검토가 필요됐다.
세 번째로 재정학, 후생경제학에는 이미 정착한 이미지가 있어서 거기서 양측에서 바라는 분야와는 약간 다른 더 넓은 분야 또는 양쪽에 공통되는 분야를 다루는 것으로서 공공경제학이라는 말이 사용되게 되었다.
이 같은 이유로 공공경제학은 재정학, 후생경제학을 내포한 더욱 넓은 학문 영역으로서 융성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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