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6장 거시경제의 장기균형: 폐쇄경제에서 우리는 자연실업률의 결정요인에 관해 배웠다. 6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연실업률 곧 완전고용수준 실업률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한다. 즉 기간이 짧은 경우에는 자연실업률이 일정하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고려하는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에는 그림 6-7 우리나라의 자연실업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큰 주기를 갖는 곡선으로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연실업률을 정의하는 방법은 고려하는 기간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그 방법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긴 시간이 경과하고 경제구조가 변화하면 자연실업률도 변화하며,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정책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연실업률이 증가하면 필립스곡선이 위로 이동한다. 이는 실업률의 하락 없이 물가가 상승함을 의미한다.
자연 실업률이 크게 변동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80년대 유럽에서 일어난 실업률 변동은 자연실업률을 중심으로 단기적인 경기변동을 설명하는 방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했다. 즉 유럽 여러 나라의 실업률은 1974년 1차 유가파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4% 이하 수준을 유지했으나 1차 유가파동이 발생한 후 1970년대 내내 실업률이 꾸준히 상승해 1980년대에는 10% 이상의 수준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림 8-4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실업률이 10% 이상이 된 다음에는 평균적으로 증가한 수준에서 실업률이 유지되고 있다.
이 현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970년대에 실업률을 증가시킨 것은 원유 가격의 급속한 상승이었으나 1980년대에 원유 가격이 하향 안정화됐으며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실질가격으로 나타낸 원유 가격이 1970년대 유가파동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증가한 실업률이 원래 수준으로 복귀하지 않고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현상을 일으킨 원인이 사라진 후에도 이미 초래된 현상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이력현상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난 이력현상을 유럽의 이력현상이라고 한다.
2010년 현재 프랑스나 독일의 실업률은 평균적으로 10% 가까운 수준에서 20년 이상 유지돼 이제는 그것을 자연실업률이라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유럽 국가들의 실업률에서 볼 수 있는 (과거의 경제적인 사건이 자연실업률에 항구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력현상은 고전학파의 시장청산이론과 자연실업률 가설에 큰 도전이 되었다.
즉 유럽의 경우 단기적인 경기변동을 일으키는 유가상승이 실업률을 일시적으로 변동시킨 것이 아니라 자연실업률 자체를 변동시킨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이론 곧 경기변동이 장기균형을 중심으로 일어나며, 장기균형은 경기변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론이 옮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유럽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가능한 답을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 실업에 따른 인적자본의 상실이다. 즉 불황이 시작되면서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 일자리에서 터득한 기술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이 경우에는 불황이 끝나고 호황으로 접어들어도 실직상태에 있던 노동자가 새 직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랫동안 실업상태에 있게 되면 사기저하와 함께 일에 대한 태도가 변하게 되어 직장을 찾는 데 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불황은 마찰적 실업을 증가시키고 자연실업률 또한 증가시키는 장기 효과를 가지게 된다.
2. 불황은 투자를 감소시켜 노동자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물적자본의 양도 감소한다. 물적자본의 양이 감소하면 노동자들의 생산성도 감소한다. 따라서 일단 불황이 찾아오면 물적자본이 감소해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하락하기 때문에 실직자들이 새 일자리를 찾는 것이 더 어렵게 된다.
3. 이력현상은 앞에서 살펴본 인사이다-아웃사이더 이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즉 실업자가 된다는 것은 사용자와 협상할 수 있는 인사이더의 지위를 상실하고 아웃사이더가 됨을 의미한다. 이 경우에 사용자와 협상을 하는 소수의 인사이더들이 실업률을 낮추는 데에 관심이 없다면 임금 경직성과 총공급곡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구조적 실업을 증가시킨다.
4. 6장 거시경제의 장기균형 : 폐쇄경제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정부 정책 가운데에서 자연실업률을 높이는 것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실업보험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유럽의 실업보험이 더 관대한 편인데, 이것이 유럽의 이력현상의 한 원인일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레스콘은 이처럼 높은 실업률 및 낮은 노동공급 현상이 마치 유럽 고유의 특성으로 비치나, 보다 본질적 이유로서 높은 세율과 사회보장 비용에 기인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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