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의 <일반이론>이 출반된 후 10년 이내에 케인즈학파는 거시경제학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됐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황금기를 구가했다. 1960년대 초반 케인즈학파 경제학이 절정을 이뤘을 때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경제정책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인플레이션이나 불황 없이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당시의 경제학자들은 몇 가지 해결해야 할 작은 문제들이 남아 있지만 거시경제학의 주요 문제는 모두 해결됐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 신고적학파 종합
이 시기에 케인즈학파 이론에 대한 동조자와 비판자들 사이에 의견 일치가 나타나게 됐는데 이를 신고전학파 종합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거시경제이론을 4개 시장 _재화시장, 화폐시장, 노동시장, 채권시장_에서의 일반균형이론으로 나타내고 케인즈학파의 모형을 일반균형이론의 특수한 경우로 설명했다. 이 모형들의 핵심은 화폐변수보다는 실질변수였기 때문에 케인즈학파 경제학의 혁명적인 특성을 어느 정도 훼손하는 측면이 있었다.
케인즈의 이론에 대한 신고전학파 종합의 이러한 해석은 케인즈가 스스로 생각한 거시경제이론에 대한 공헌을 부정하는 측면도 있었다. 케인즈는 그의 이론이 고전학파의 이론보다 일반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의 저서에 제목을 붙일 때 "일반이론"이라는 말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고전학파 종합에 따르면, 케인즈가 거시경제학에 몇 가지 매우 현실적이고도 유용한 개념을 도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순수한 이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는 기존의 이론적인 구조에 몇 가지 가정을 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케인즈의 가정들은 현실 경제에 괜한 통찰력을 제공하지만 일반이론의 징표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신고전학파 종합에 속한 경제학자들은 일련의 가정을 도입하면 고전학파의 결과들을 증명할 수도 있고 다른 일련의 가정들을 도입하면 케인즈학파의 결과들도 증명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신들의 모형이야말로 완전한 일반성을 갖추고 있는 모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전학파의 이론과 케인즈학파의 이론이 근본적으로 유사하다고 보았으며 단지 사용하고 있는 가정들이 다를 뿐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신고전학파 종합은 케인즈학파의 가정들이 고전학파의 가정들과 다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제한적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케인즈학파의 가정들은 고전학파의 가정들보다 일반적이지 못하며 케인즈의 모형은 보다 일반적인 고전학파 모형의 특수한 경우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앞에서 언급한 4개 시장으로 이루어진 일반균형모형을 "신고전학파 종합"이라고 부른 것이다.
(2) 통화주의
1950년대는 케인즈학파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으나 경제현상에 대한 해석과 이론 측면에서 케인즈학파에 대한 도전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했다. 케인즈학파가 옹호하던 정책수단인 재정정책은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비상상태를 빠져나오는 데에는 매우 유효하게 기능했다. 그러나 완전고용에 가까운 고용이 실현되고 있는 (대공황 시기와는 조건이 다른) 시기에 재정정책을 이용해 경제를 미세조정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즉 재정정책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언제, 얼마만큼의 크기로 정책을 시행할 것인지 알아야 하는데 이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만약 시기를 잘못 선택하면 경제를 안정화하기보다 오히려 경제를 불안정화할 수도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재정정책을 경기 안정화를 위해 사용하는 경우에 국제수지 문제가 나타나거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려졌다.
이렇게 케인즈학파의 정책제안에서 현실적인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고전학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일군의 학자들이 케인즈학파의 이론적인 경직성에 대하여 반기를 들게 됐다. 그 핵심에 일찍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이 있었다. 이들은 1950대에 새로이 나타나기 시작한 경제현상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화폐 공급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통화주의자 또는 통화주의학파라고 불렸다. 이들은 명목소득 변동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화폐공급이며, 화폐공급이 증가할 때 명목소득의 구성요소인 실질소득과 물가수준이 각각 얼마만큼 증가하느냐에 대해 경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통화주의학파 이론과 실증연구의 핵심은 화폐공급 곧 통화량에 있었는데, 이는 고전학파 화폐이론인 화폐수량설에 대한 프리드먼의 재해석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를 때로는 신화폐수량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통화주의학파는 화폐공급이라는 핵심적인 변수에 대한 재해석과 그 이후의 실증분석을 통해 주목받게 되었다. 그들은 작은 이론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이론이 좋은 이론이라는 철학적인 입장에서 연구를 진행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해 주는 많은 실증분석 결과를 얻게 됐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케인즈학파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이는 통화주의 이론이 화폐공급이라는 한 변수를 중심으로 전개됐을 뿐만 아니라 화폐공급이 다른 거시경제 변수에 영향을 미치는 조정경로를 설명하는 이론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60년대는 케인즈학파가 아직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통화주의학파가 거시경제학계에서의 비중을 높여 나간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통화주의학파가 그 영향력을 크게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후반 월남전의 여파로 미국 경제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인플레이션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70년대 유가파동의 결과, 미국 경제에는 높은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이는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상충관계에 기초한 필립스곡선에 바탕을 둔 케인즈학파에게 커다란 타격을 안겨주었다. 이때 케인즈학파에게 가해진 비판은 명목임금과 가격의 경적성에 대해서도 견고한 이론적 기초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적인 여건 아래에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고전학파 경제학이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접근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3) 새고전학파
1970년대는 경제학 전반, 특히 거시경제학 분야에 일대 변혁이 일어난 시기였다. 이 시기는 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가 각각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현대화된 고전학파 계열의 거시경제 이론이 1970년대 이후 거시경제학의 발전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1970년대 이후 나타난 고전학파 계열의 주요 거시경제이론은 새고전학파, 공급중시경제학, 실물경기변동이론 등이다.
고전학파 경제학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이후에 케인즈학파가 누렸던 바와 같은 주류로서의 지배적인 지위를 고전학파 경제학이 확보한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 케인즈학파는 보다 정교한 이론적인 구성을 갖춘 새케인즈학파로 거듭났다. 이러한 발전적 변신을 통해 고전학파 이론은 경기변동과 실업을, 케인즈학파 이론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케인즈학파는 임금과 가격의 경직성에 대한 견고한 이론적 기초를 마련했다. 이제 이들 이론에 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거시경제학이 20세기 후반에 이룬 가장 큰 이론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는 1960년대 초 뮤스가 처음 경제이론에 도입하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작인 루카사가 1970년대 초 경제적으로 의미 있게 재해석한 합리적 기대이론일 것이다. 합리적 기대를 고전학파 이론의 전개에 이용한 학파를 새고전학파라고 부른다. 합리적 기대란 경제주체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모든 정보를 이용해 미래에 대한 기대를 형성함을 의미한다.
정보를 모두 이용한다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정보를 모두-완전히- 이용하기 위해서는 같은 실수를 계속 범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정보를 완전히 이용한다는 것은 이용 가능한 정보가 기대 오차를 더 이상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새고전학파는 합리적 기대와 함께 고전학파와 마찬가지로 시장청산을 가정한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정보 흐름이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즉 한 경제에 서로 분리되어 있는 여러 시장이 존재한다면 한 시장에서 일어난 사건이 다른 시장에 알려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때 각각의 시장 참여자는 자기가 참여하고 있는 시장의 정보는 가지고 있으나 다른 시장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관한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정보를 불완전한 정보라고 부른다. 이 경우에는 비록 시장청산이 일어나더라도 거시경제가 완전고용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실업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불완전 정보에 의하면, 시장청산이 이루어지더라도 사람들이 다른 시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르거나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오인하므로 산출량이 완전고용수준에서 벗어나는 경기변동이 일어나고 실업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모형을 루카스의 오인모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장청산이 일어나도 경기변동과 실업이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은 항상 완전고용수준에서 균형이 일어난다는 고전학파의 주장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시장청산을 가정하는 고전학파도 드디어 실업과 경기변동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새고전학파의 이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책제안은 고전학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새고전학파는 단기적으로 경기변동과 실업이 일어나지만 이를 안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면 때로는 가능하지도 않다고 본다. 즉 경제주체들이 어떤 정책을 예상한 경우에는 그 정책을 경제주체들이 모든 의사결정에 미리 반영하므로 효과가 없다. 따라서 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은밀히 정책을 계획하여 시행해야 하는데 이런 정책은 안정적인 기대에 바탕을 두고 소비나 투자를 계획하려는 경제주체들을 교란시키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고전학파는 근본적으로 정부가 정책을 통해 경제에 간섭하는 것을 비판했는데, 이는 고전학파의 자유방임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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