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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화폐의 기원

by 써뉘맘 2022.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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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는 moneie에서 왔다. 역사를 살펴보면, 옛날 사람들은 화폐가 없이 생활했다. 심지어 기원전 800년대에 트로이 전쟁 기간 중 아킬레스를 중심으로 한 장편 서사시 일리아드와 트로이 전쟁 이후 이야기를 그린 오딧세이를 지은 호머의 시대에도 누군가의 노예에게 눈독을 들였다면, 노예를 사는 유일한 방법은 두 마리정도의 황소나 몇 개의 잘 만들어진 손도끼와 바꾸는 것이었다. 청동기 시대에 크레테에서 간혹 금속 조각들이 교환되기는 했으나 이런 교환 행위가 화폐의 제도의 원산지인 소아시아를 통해서(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 본토에 도달하는 데는 1,00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머니라는 말 자체는 그 이후에 생겨났다. 그런 그 유래를 더듬어 올라가면 라틴어의 모네타이다. 이는 주피터의 아내이자 여성 보호의 신인 유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유노가 왜 모네타라고 불렸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카피톨린 언덕 위에 있는 그녀의 신전에서 로마인들에게 지진을 예고하고 새끼 밴 암퇘지를 산 제물로 바치도록 권하는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고올인들이 기원전 390년경에 로마에 침입해 들어와, 밤중에 카피톨린 언덕을 점령하려고 시도하자, 유노가 경고를 해주게 되었다고 한다. 유노는 이와 같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시의 적절한 충고를 해준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기원전 344년에 옛 신전 대신, 유노 모네타 신전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신전이 카피톨린 언덕에 세워졌다.
 기원전 290년, 에피루스의 왕 피르후스가 이태리 본토에 공격하여 수천 명의 로마 군사들이 그를 맞아 싸우기 위해 파견되었다. 로마 군은 이 싸움에서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그들은 파견군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경비가 바닥이 나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 현명한 몇몇 사람이 자신들의 믿음직한 자문관인 유노에게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자 유노는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서 싸움을 하는 자들은 궁핍한 일이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 자신들의 모든 싸움은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던 로마 병사들은 그러한 조언에 당연히 용기백배 고무되었으며 그 후로부터 돈은 유노의 보호 하에 주조되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유노 모네타 신전 안에 화폐 주조소를 세웠고, 그 뒤부터 모네타는 화폐 주조소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주조된 화폐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지금 사용하는 '머니"라는 말은 옛 프랑스어 moneie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또한 영어의 화폐 주조서(mint)라는 말의 근원인 라틴어 모네타(moneta)의 번안인 것이다. 그러나 그 프랑스어는 독일어 무늬타(munita)를 거쳐 온 것이다.
혜카톰베는 고대 그리스어로 100을 나타내는 hekaton와 소를 나타내는 bous의 합성어이다. 헤카톰베는 고대 그리스어로 고대 그리스에서 제물로 소 100마리를 신에게 바치는 제사를 가리킨다. 헤카톰베는 특별한 종교 의식에서 그리스의 신 아폴론, 아테나 그리고 헤라에게 바쳐졌다. oblo은 고대그리스어로 '뱉어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obolus로부터 왔다. obol은 화폐의 단위로서 고대 그리스 은화를 나타낸다.
 유구한 황금의 역사는 태양을 숭배하는 인류의 종교성에서 비롯됐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황금을 만질 수 없는 태양이라고 여겼으며, 고대 잉카인들은 자신들을 태양의 후예라고 자부해 황금과 보석으로 태양 신전을 건축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세상을 밝게 비췄으며 만물을 낳고 길렀고, 고대인들은 이 금빛 찬란한 태양과 황금을 동일시하며 숭배했다. 역사상 황금이 가장 넘쳐났던 국가는 고대 이집트이다. 이집트인은 태양신을 최고의 신으로 섬겼으며 이후에는 파라오들이 태양신과 자신을 동격으로 만들었다. 당시 이집트인은 황금으로 만든 각종 머리 장식, 호신부 등의 물품을 착용하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황금 장신구를 선호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신앙을 보면 라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이다. 고대 이집트 제5왕조 때부터 주신으로 숭배받았다. 그는 이집트 낮, 정오의 태양신으로서 아침에는 케프리, 저녁에는 아툼이라고 불리었다. 벽화에서라는 매의 머리로 코브라가 태양을 둘러싼 모양의 왕관을 쓰고 있다. 주요 숭배 도시는 태양의 도시라 불린 헬리오폴리스다. 고대 이집트 후기 왕조에 이르러서는 호루스와 합쳐져 라-호라크티라고 불리었다. 태양신은 파라오를 보호하고 왕권을 상징하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라에 대한 숭배의식은 더 강력해졌다. 그는 4명의 딸을 낳았는데, 그중 세크메트는 암사자의 머리를 한 파괴의 여신이다. 평상시에는 소의 머리를 한 사랑과 미의 여신인 하토르이나, 라의 벌을 인류에게 가할 때는 세크메트로 변하였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 후기에 이르러서는 소의 눈이 인류에 대한 동정의 의미를 담은 "라의 눈"이라고 불리었는데, 따라서 소 또한 라의 가축이라 숭배되었다. 고대 이집트 남부와 누비아에서 생산한 금괴를 화폐로 사용하였는데 파라오의 신성함과 권력을 상징하며 금의 가치는 은의 가치의 10배로 알려져 있다.
금본위제 폐지 이전의 역사
권력과 부의 상징인 금이 이용되는 16세기 이전을 살펴보면 기원전 700년에 에게 해의 리디아에서 금을 주화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금 2/3와 은 1/3로 이루어진 덤프로 사용되었는데, 크로이소스, 트로이온스가 사용되었다. 기원전 4세기, 로마제국은 솔리두스와 리브라가 사용되었는데, 리브라는 파운드의 기원이고 솔리두스는 금화를 나타낸다. 8세기, 영국 왕 오퍼는 은화인 페니를 사용하였다. 13세기,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금화시대가 도래하였는데 시칠리아에서 9세기부터 사용된 타리, 아우구스탈리스, 제노인이 이용되었다. 14세기,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감소에 따른 1인당 재산 및 소비 증가로 금 생산량이 감소하였고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으로 프랑스 왕 몸값이 영국으로 금의 형태로 이동되었다. 15세기, 유럽에서 금의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에 신대륙발견으로 금을 유럽으로 운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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